[추석설교]효도와 제사
정필도목사(수영로교회)
제목 : 효도와 제사
본문 : 고린도전서 10장 20-22절
대저 이방인의 제사하는 것은 귀신에게 하는 것이요 하나님께 제사하는 것이 아니니 나는 너희가 귀신과 교제하는 자 되기를 원치 아니하노라 21 너희가 주의 잔과 귀신의 잔을 겸하여 마시지 못하고 주의 상과 귀신의 상에 겸하여 참예치 못하리라 니 22 그러면 우리가 주를 노여워하시게 하겠느냐 우리가 주보다 강한 자냐
최근에는 미국의 테러사건과 세계경기의 침체 등 일련의 사건들로 인해 우리의 마음이 매우 무겁습니다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 하나님께서 금년에도 변함없이 이 남한 땅에 곡식과 과일이 넘쳐나는 대풍을 주셨습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이 백성들이 과거 어느 때보다 마음이 악해져서 하나님의 진노와 심판을 받아 마땅하나, 우리 성도들이 날마다 이 백성들의 죄악을 자신의 죄악으로 생각하고 간구하는 눈물의 기도가 하나님 앞에 상달된 연고인줄 믿습니다. 특별히 ꡒ하나님 아버지! 이 백성들의 죄를 따라 진노하지 마시고 불쌍히 여겨주세요. 용서해주세요. 자비와 긍휼을 베풀어주세요!ꡓ라고 기도하는 성도들 덕분에 이 나라 이 백성들이 이렇게 어려운 중에도 잘 살게 되는 줄 확신합니다.
금년 추석 명절에도 고향을 찾는 사람들의 숫자가 대략 3천만 명 이상 되리라고 정부에서 추정하고 있습니다. 이 날은 오랜만에 부모님을 만나 뵙고 평소에 만나지 못했던 친척 분들을 만나 음식을 나누며 지난 얘기들로 꽃을 피우는 참으로 즐겁고 흐믓한 시간인 줄 믿습니다. 그러나 문제는, 하나님을 모르는 부모 형제들이 죽은 조상 앞에 제사를 지냄으로 해서 본의 아니게 얼굴을 붉히게 되고 때로 큰소리가 나게 되며 급기야는 서로 씁쓸한 마음으로 헤어지게 되는... 명절마다 우리 성도들이 이런 안타까운 일을 당하게 되니 참으로 고민이 되지 아니할 수 없습니다. 아마 여러분들은 명절을 맞이할 때마다 ꡒ이번에는 우리 부모님, 우리 형제들이 모두 다 예수 믿게 해주세요. 전도할 수 있게 해주세요. 제사를 지내는 대신 예배를 드릴 수 있게 해주세요!ꡓ라고 기도를 많이 해오신 줄 압니다. 모두 다 예수님을 믿으므로 다 같이 찬양하고 기도한다면 얼마나 아름다운 시간을 보낼 수 있을까요? 성도 여러분의 간절한 기도가 꼭 응답되기를 바랍니다.
저도 초등학교 때 저희 가정에서 가장 먼저 예수를 믿었기 때문에 핍박을 많이 받아왔습니다. 아버지를 일찍 여의고 사는 저희 집에, 어느 날 인가 먼 친척뻘 되시는 아저씨께서 저를 방 한구석에 앉히고 저 때문에 우리 집안이 망한다고 하시며, 예수 믿으려면 집을 나가라고 호통을 치셨습니다. 그리고 그 무거운 빨래 다듬이 돌을 들어 저를 내리치실 기세로 ꡒ이놈의 자식, 너 죽고 싶어. 이래도 정말 예수 믿을거야?ꡓ라고 위협을 가하셨습니다. 그러나 저는 겁주려고 하시는 줄 알았기 때문에 그 자리에서 꼼짝도 하지 않았습니다. 설마 저를 죽이기야 하겠습니까? 그러나 저 자신은 죽어도 예수를 믿겠다는 각오가 되어 있었기 때문에 결코 무섭지 않았습니다. 이렇게 첫 번째 위기를 넘겼습니다.
이런 엄청난 시련 이후 두 번째 시련이 왔습니다.
할아버지께서 돌아가신 때였습니다. 장례식을 치를 때 모두 다 엎드려 절을 하는데 유독 저만 절을 하지 않다 보니 어른들의 눈에 제가 얼마나 미웠겠습니까. 저는 이 일로 인해 욕을 많이 먹었습니다. 특별히 누구보다도 저를 사랑해주시고 아껴주시는 할머니로부터 ꡒ너는 내가 죽은 다음에도 절하지 않겠구나.ꡓ라고 하시며 너무 너무 섭섭해하셨습니다.
그러나 저는 할머니에게 ꡒ할머니! 돌아가신 분에게 절하면 알아요? 몰라요?ꡓ라고 되물었습니다. 할머니께서 버럭 소리를 지르시며 ꡒ죽은 사람이 어떻게 알아.ꡓ ꡒ그래서, 제가 절 안 하는 거예요. 살아계시다면 하루에 열 번 백 번도 하지요. 마찬가지로 할머니 돌아가셔도 저는 절 안 할거예요.ꡓ ꡒ만약 할머니께서 그 일때문에 억울하시고 섭섭하시다면 할머니 살아계실 때 열심히 절할테니 미리 절 받으세요.ꡓ라고 그 자리에서 큰절을 올렸습니다. 그리고 그 다음 날부터 아침에 일어나면 학교에 가기 전에 할머니 방에 들려 ꡒ할머니 미리 절 받으세요.ꡓ라고 큰절을 꾸벅하고 집을 나섰습니다. 이렇게 매일 매일 할머니에게 절을 하고 등교하는 일을 몇 달째 계속해서 하던 중에, 할머니께서 성령의 감동을 받으셨는지 어느 날 저를 보시고 ꡒ그만해라 됐다. 나도 예수 믿을란다.ꡓ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사실 저는 어려서부터 할머니에게 효도를 다 해왔습니다. 시간이 날 때마다 할머니 방에 들려 팔다리를 주물러들이고 간혹 눈깔사탕이라도 생기면 먹지 않고 주머니에 넣어가지고 와서 ꡒ할머니! 눈감으세요. 입 벌려보세요.ꡓ하고 할머니 입에 쏙 넣어드리곤 했습니다. 그런 손자의 모습이 얼마나 이뻤겠습니까? 이렇게 완고하시던 할머니께서도 열심히 교회나오시다가 예수님을 잘 믿고 천국으로 가셨습니다.
추석명절이 되면 죽은 조상 앞에 음식을 차려놓고 제사를 지내는 목적은, 금년에도 농사가 풍년들게 해주신 조상의 은혜에 감사하는 마음으로 조상의 은덕을 기리며, 음식을 차려놓고 정성껏 대접하는 효도의 마음으로 제사를 지내는 줄 압니다. 어찌보면 더할 나위 없이 아름다운 미풍양속으로 비춰지지만 우리 기독교의 입장에서 볼 때에는 몇 가지 문제점이 있습니다.
추석명절의 문제점은?
1. 제사 문제
성경에서 제사는 오직 하나님께만 드리라고 했습니다. 창세기 4장을 보면, 가인과 아벨 두 형제가 하나님 앞에 제사를 드리는 모습이 소개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 드리는 제사에는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하는 마음과 하나님 앞에 범한 죄를 용서함 받기 위한 목적이 있습니다. 그런데 좬가인은 땅의 소산으로 제물을 삼아 여호와께 드렸고 아벨은 자기도 양의 첫 새끼와 그 기름으로 드렸더니 여호와께서 아벨과 그 제물은 열납하셨으나 가인과 그 제물은 열납하지 아니하신지라좭고 했습니다(창 4:3-5). 하나님께서 한 사람의 제사는 받으셨고 다른 한 사람의 제사는 받지 아니하셨습니다.
가인의 제사가 하나님 앞에 열납되지 아니한 이유는?
쥱 하나님 앞에 감사를 드리기는 했으나 정성이 모자랐습니다.
성경을 보면, 하나님 앞에서는 곡식이든 과일이든 무엇을 드리든지 간에 첫 열매를 드리게 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가인은 첫 열매를 드렸다는 말이 없습니다. 여러분! 여기에서 우리는 교훈을 받아야 합니다. 하나님을 섬기는 일에도 정성이 있어야 합니다. [십의 일조]를 드려도 새 돈을 골라 먼저 구별하여 첫 열매로 드리고 나서, 그 나머지 [십의 구조]를 가지고 각자 필요한 일에 사용해야 합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중심을 보십니다. 따라서 가장 좋은 것을 먼저 하나님께 드리는 그 마음을 하나님이 열납하실 줄 믿습니다.
쥲 피 없는 제사를 드렸습니다.
피 없는 제사는 속죄 받을 길이 없습니다. 히브리서 9:22절을 보면 좬율법을 좇아 거의 모든 물건이 피로써 정결케 되나니 피 흘림이 없은즉 사함이 없느니라좭고 했습니다. 그런데 가인은 피의 제물을 드리지 않고 땅의 소산물로 제물을 삼아 드렸습니다.
쥳 악한 마음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가인이 얼마 악독한 인간이었는지 요한일서 3:12절을 보면 좬가인같이 하지 말라 저는 악한 자에게 속하여 그 아우를 죽였으니 어찐 연고로 죽였느뇨 자기의 행위는 악하고 그 아우의 행위는 의로움이니라좭고 했습니다. 이런 악독한 인간이 하루에 제사를 열 번 백 번 드린다한들 우리 하나님께서 받으시겠습니까? 그러나 가인과 달리 아벨은 믿음으로 더 나은 제사를 드렸습니다.
여러분! 지금 이 시간 성전에 모여 수천 명이 똑같이 예배를 드리고 있습니다. 그러나 믿음으로 드리는 사람도 있고, 그렇지 않은 사람도 있습니다. 여기에는 큰 차이가 있습니다. 그렇다고 하면, 믿음으로 예배를 드린다는 말이 무엇이겠습니까? 한마디로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이 있느냐 없느냐? 하는 것입니다. 성전에 나와 찬송을 해도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헌금을 해도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예배를 드리느냐 아니냐 하는 것입니다. 이 마음을 가진 사람과 가지지 않은 사람과는 하늘과 땅 차이입니다. 아벨은 양의 첫 새끼와 피로 제사를 드리므로 해서 속죄함을 받았습니다. 뿐만 아니라 아벨은 의로운 사람으로 자신과 그의 재물이 함께 하나님 앞에 열납되는, 믿음으로 더 나은 제사를 하나님께 드렸습니다.
구약성경을 보면,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 앞에 감사하는 마음으로 번제를 드렸을 뿐만 아니라 범한 죄를 사함받기 위해 속죄의 제사를 드렸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을 모르는 이방사람들은 하나님께 제사하지 아니하고, 해와 달과 별을 섬기고 심지어 산이나 강이나 바다나 바위 고목들을 향해 절을 하고 제물을 바치고, 죽은 조상에게까지 제사를 지냈습니다.
하나님을 잘 섬기면 복을 받고, 사신우상을 섬기면 망하게 됩니다.
지나온 역사를 돌이켜볼 때 역사는 반복된다는 것을 알수 있습니다. 이스라엘의 역사를 보면, 믿음이 좋은 왕들은 언제나 하나님만을 섬기고 하나님 앞에 제사를 드림으로 해서 축복을 받고 나라가 강성했습니다. 그러나 믿음이 없는 왕들은 하나님을 저버리고 이방종교를 따라 우상을 섬기므로 해서 저주를 받고 고통을 많이 당했습니다. 그런데 연약한 인간들은 속죄의 제사를 드리고도 돌아서면 또 죄를 지었습니다. 아무리 하나님 앞에 속죄의 제사를 드려도 여전히 죄를 범하고, 아무런 변화도 없으니 어찌보면 소망이 없는 사람들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인간들을 불쌍히 여겨주시사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이 세상에 보내주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 박혀 죽어주심으로 말미암아 십자가에서 흘리신 보혈로, 우리의 과거 현재 미래의 모든 죄를 대속해주셨습니다. 그러므로 이제는 더 이상 하나님 앞에 짐승을 잡아 그 피로 속죄의 제사를 거듭하여 드릴 필요가 없어졌습니다.
히브리서 11:10-14, 17-18절을 보면 좬이 뜻을 좇아 예수 그리스도의 몸을 단번에 드리심으로 말미암아 우리가 거룩함을 얻었노라 제사장마다 매일 서서 섬기며 자주 같은 제사를 드리되 이 제사는 언제든지 죄를 없게 하지 못하거니와 오직 그리스도는 죄를 위하여 한 영원한 제사를 드리시고 하나님 우편에 앉으사 그 후에 자기 원수들로 자기 발등상이 되게 하실 때까지 기다리시나니 저가 한 제물로 거룩하게 된 자들을 영원히 온전케 하셨느니라좭, 좬또 저희 죄와 저희 불법을 내가 다시 기억지 아니하리라 하셨으니 이것을 사하셨은즉 다시 죄를 위하여 제사드릴 것이 없느니라좭고 말씀하셨습니다. 이처럼 예수님께서 십자가를 지신 이후에는 다시는 제사를 드릴 필요가 없어졌습니다. 그 대신 하나님 앞에 예배를 드리게 되었습니다.
하나님 앞에 예배를 드릴 때 중요한 것은?
쥱 회개하는 것입니다.
지나간 한 주간동안도 알고 지은 죄, 모르고 지은 죄 다 용서해달라는 회개가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마음을 아프게 해드린 것을 용서해달라는 구체적인 회개가 있어야 합니다.
쥲 감사하는 것입니다.
사고 많은 이 세상에서 오늘 이 자리에 건강한 모습으로 나오게 하신 것을 감사하고 그밖에 여러 가지 감사의 제목을 따라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해야 합니다.
쥳 말씀을 잘 듣는 것입니다.
오늘도 하나님께서 내게 주시는 말씀과 교훈이 무엇인지 잘 들어야 합니다. 여러분 언제나 말씀을 들을 때에는 사람의 말로 듣지 말아야 합니다. 이 시간 하나님께서 목사님을 통해 내게 주시는 말씀이 무엇인지 주님의 음성을 들어야 합니다.
이방인들의 제사는 귀신에게 하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에서 좬대저 이방인의 제사하는 것은 귀신에게 하는 것이요 하나님께 제사하는 것이 아니니 나는 너희가 귀신과 교제하는 자 되기를 원치 아니하노라좭고 말씀했습니다. 사실 죽은 자는 전혀 의식이 없습니다. 아무 것도 모릅니다. 아무리 많은 음식을 차려놓고, 아무리 절을 많이 해도 먹지도 못하고 알지도 못합니다. 따라서 죽은 자에게 제사하는 것은 결과적으로 귀신에게 하는 것입니다. 더구나 귀신을 섬기고 제사하는 것은 하나님 앞에 진노받을 크나큰 죄악입니다. 따라서 우리 기독교인들은 더 이상 죽은 조상에게 제사를 지내서는 안 됩니다. 오직 살아계신 하나님께만 예배를 드려야 합니다.
시편 106:28-29절을 보면 좬저희가 또 바알브올과 연합하여 죽은 자에게 제사한 음식을 먹어서 그 행위로 주를 격노케 함을 인하여 재앙이 그 중에 유행하였도다좭라고 했습니다. 이 말씀은 민수기 25장을 인용한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광야길을 가다가 싯딤에 머물렀을 때 모압 여자들이 그들의 신들에게 제사하면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청하였습니다. 이에 백성들이 그들의 제사음식을 먹고 그들과 같이 바알세불에게 절을 했습니다. 이 일은 하나님을 격노케 만들었습니다. 결국 하나님의 진노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임하여 2만 4천명이 되는 많은 사람들이 염병에 걸려죽었습니다. 여기에서 우리는 귀신에게 제사하는 것은 하나님을 노엽게 하여 하나님으로부터 매를 맞게 된다는 사실을 알게 됩니다.
2. 효도 문제
죽은 조상에게 제사하는 것이 과연 효도가 되느냐 하는 것입니다. 엄밀히 말해서 효도는 살아계신 부모께 하는 것입니다. 참된 효도는 부모님의 마음을 기쁘게 해드리고 몸을 편안하게 해드리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말을 해도 ꡒ어머니 아버지 감사해요.ꡓ ꡒ이렇게 키워주신 은혜 감사해요.ꡓ라고 늘 감사를 표하고, ꡒ부모님 덕분에 성공했습니다.ꡓ ꡒ부모님 덕분에 이렇게 잘 삽니다.ꡓ 이렇게 부모님의 은덕을 높여드리면 우리 부모님께서 얼마나 흐믓해하시겠습니까.
음식을 해도 부모님의 입맛에 맞게 정성껏 만들어 드리고, 또 부모님이 우리를 키우시느라고 얼마나 고생이 많으셨습니까. 하늘에 계신 하나님 아버지께 십일조를 드리듯이 어머니 아버지 두 분에게도 십일조를 나누어 드려보세요. 아마 자식 키운 보람을 느끼실 것입니다. 참된 효도는 이렇게 하는 것입니다.
기독교의 효도가 산 효도요 실제적인 효도이며 참 효도입니다.
이방종교의 효도는 죽은 효도요, 형식적인 효도이며 거짓 효도입니다. 기독교인들은 추석명절에 제사를 지내는 대신 고인을 추모하여 하나님께 예배드릴 수 있습니다. 추모예배를 드릴 때, 이렇게 훌륭한 부모를 주신 것을 감사하시기 바랍니다.
추모의 예배를 드리는 목적은?
쥱 조상의 빛나는 업적과 유덕과 유훈을 되새기며 그대로 살지 못한 것을 하나님 앞에 회개하고 이제부터는 그대로 살기로 결심하는 것입니다.
쥲 살아계신 부모님께 갑절의 효도를 해드리기로 결심하는 것입니다.
쥳 형제와 친척간에 서로 사랑하며 우애있게 살아가기로 결심하는 것입니다.
쥵 믿음으로 살아서 천국에서 면류관 쓰고 다같이 만나기로 다짐하는 것입니다.
누가복음 16장에 나오는 [부자와 나사로]에서 볼 수 있듯이 자신은 비록 천국에 들어가지 못했으나 아직 세상에 남아있는 자신의 형제들만은 이곳에 오면 안 된다고 안타까워하며, 천사를 그들에게 보내 이곳 사정을 알 수 있도록 부탁한 것같이 지옥에 가신 부모님이라도 이 마음을 가지고 계실 줄 믿습니다. 그러므로 추모 예배를 드릴 때 믿음생활 잘하다가 면류관 쓰고 천국에서 만나자고 다짐하는 시간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아무쪼록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 사람들에게는 덕을 세워서 존경받고, 후손들에게는 좋은 본을 보이며, 날마다 축복을 받을 뿐만 아니라 축복을 나누어주면서 사는 성도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정필도목사(수영로교회)
제목 : 효도와 제사
본문 : 고린도전서 10장 20-22절
대저 이방인의 제사하는 것은 귀신에게 하는 것이요 하나님께 제사하는 것이 아니니 나는 너희가 귀신과 교제하는 자 되기를 원치 아니하노라 21 너희가 주의 잔과 귀신의 잔을 겸하여 마시지 못하고 주의 상과 귀신의 상에 겸하여 참예치 못하리라 니 22 그러면 우리가 주를 노여워하시게 하겠느냐 우리가 주보다 강한 자냐
최근에는 미국의 테러사건과 세계경기의 침체 등 일련의 사건들로 인해 우리의 마음이 매우 무겁습니다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 하나님께서 금년에도 변함없이 이 남한 땅에 곡식과 과일이 넘쳐나는 대풍을 주셨습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이 백성들이 과거 어느 때보다 마음이 악해져서 하나님의 진노와 심판을 받아 마땅하나, 우리 성도들이 날마다 이 백성들의 죄악을 자신의 죄악으로 생각하고 간구하는 눈물의 기도가 하나님 앞에 상달된 연고인줄 믿습니다. 특별히 ꡒ하나님 아버지! 이 백성들의 죄를 따라 진노하지 마시고 불쌍히 여겨주세요. 용서해주세요. 자비와 긍휼을 베풀어주세요!ꡓ라고 기도하는 성도들 덕분에 이 나라 이 백성들이 이렇게 어려운 중에도 잘 살게 되는 줄 확신합니다.
금년 추석 명절에도 고향을 찾는 사람들의 숫자가 대략 3천만 명 이상 되리라고 정부에서 추정하고 있습니다. 이 날은 오랜만에 부모님을 만나 뵙고 평소에 만나지 못했던 친척 분들을 만나 음식을 나누며 지난 얘기들로 꽃을 피우는 참으로 즐겁고 흐믓한 시간인 줄 믿습니다. 그러나 문제는, 하나님을 모르는 부모 형제들이 죽은 조상 앞에 제사를 지냄으로 해서 본의 아니게 얼굴을 붉히게 되고 때로 큰소리가 나게 되며 급기야는 서로 씁쓸한 마음으로 헤어지게 되는... 명절마다 우리 성도들이 이런 안타까운 일을 당하게 되니 참으로 고민이 되지 아니할 수 없습니다. 아마 여러분들은 명절을 맞이할 때마다 ꡒ이번에는 우리 부모님, 우리 형제들이 모두 다 예수 믿게 해주세요. 전도할 수 있게 해주세요. 제사를 지내는 대신 예배를 드릴 수 있게 해주세요!ꡓ라고 기도를 많이 해오신 줄 압니다. 모두 다 예수님을 믿으므로 다 같이 찬양하고 기도한다면 얼마나 아름다운 시간을 보낼 수 있을까요? 성도 여러분의 간절한 기도가 꼭 응답되기를 바랍니다.
저도 초등학교 때 저희 가정에서 가장 먼저 예수를 믿었기 때문에 핍박을 많이 받아왔습니다. 아버지를 일찍 여의고 사는 저희 집에, 어느 날 인가 먼 친척뻘 되시는 아저씨께서 저를 방 한구석에 앉히고 저 때문에 우리 집안이 망한다고 하시며, 예수 믿으려면 집을 나가라고 호통을 치셨습니다. 그리고 그 무거운 빨래 다듬이 돌을 들어 저를 내리치실 기세로 ꡒ이놈의 자식, 너 죽고 싶어. 이래도 정말 예수 믿을거야?ꡓ라고 위협을 가하셨습니다. 그러나 저는 겁주려고 하시는 줄 알았기 때문에 그 자리에서 꼼짝도 하지 않았습니다. 설마 저를 죽이기야 하겠습니까? 그러나 저 자신은 죽어도 예수를 믿겠다는 각오가 되어 있었기 때문에 결코 무섭지 않았습니다. 이렇게 첫 번째 위기를 넘겼습니다.
이런 엄청난 시련 이후 두 번째 시련이 왔습니다.
할아버지께서 돌아가신 때였습니다. 장례식을 치를 때 모두 다 엎드려 절을 하는데 유독 저만 절을 하지 않다 보니 어른들의 눈에 제가 얼마나 미웠겠습니까. 저는 이 일로 인해 욕을 많이 먹었습니다. 특별히 누구보다도 저를 사랑해주시고 아껴주시는 할머니로부터 ꡒ너는 내가 죽은 다음에도 절하지 않겠구나.ꡓ라고 하시며 너무 너무 섭섭해하셨습니다.
그러나 저는 할머니에게 ꡒ할머니! 돌아가신 분에게 절하면 알아요? 몰라요?ꡓ라고 되물었습니다. 할머니께서 버럭 소리를 지르시며 ꡒ죽은 사람이 어떻게 알아.ꡓ ꡒ그래서, 제가 절 안 하는 거예요. 살아계시다면 하루에 열 번 백 번도 하지요. 마찬가지로 할머니 돌아가셔도 저는 절 안 할거예요.ꡓ ꡒ만약 할머니께서 그 일때문에 억울하시고 섭섭하시다면 할머니 살아계실 때 열심히 절할테니 미리 절 받으세요.ꡓ라고 그 자리에서 큰절을 올렸습니다. 그리고 그 다음 날부터 아침에 일어나면 학교에 가기 전에 할머니 방에 들려 ꡒ할머니 미리 절 받으세요.ꡓ라고 큰절을 꾸벅하고 집을 나섰습니다. 이렇게 매일 매일 할머니에게 절을 하고 등교하는 일을 몇 달째 계속해서 하던 중에, 할머니께서 성령의 감동을 받으셨는지 어느 날 저를 보시고 ꡒ그만해라 됐다. 나도 예수 믿을란다.ꡓ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사실 저는 어려서부터 할머니에게 효도를 다 해왔습니다. 시간이 날 때마다 할머니 방에 들려 팔다리를 주물러들이고 간혹 눈깔사탕이라도 생기면 먹지 않고 주머니에 넣어가지고 와서 ꡒ할머니! 눈감으세요. 입 벌려보세요.ꡓ하고 할머니 입에 쏙 넣어드리곤 했습니다. 그런 손자의 모습이 얼마나 이뻤겠습니까? 이렇게 완고하시던 할머니께서도 열심히 교회나오시다가 예수님을 잘 믿고 천국으로 가셨습니다.
추석명절이 되면 죽은 조상 앞에 음식을 차려놓고 제사를 지내는 목적은, 금년에도 농사가 풍년들게 해주신 조상의 은혜에 감사하는 마음으로 조상의 은덕을 기리며, 음식을 차려놓고 정성껏 대접하는 효도의 마음으로 제사를 지내는 줄 압니다. 어찌보면 더할 나위 없이 아름다운 미풍양속으로 비춰지지만 우리 기독교의 입장에서 볼 때에는 몇 가지 문제점이 있습니다.
추석명절의 문제점은?
1. 제사 문제
성경에서 제사는 오직 하나님께만 드리라고 했습니다. 창세기 4장을 보면, 가인과 아벨 두 형제가 하나님 앞에 제사를 드리는 모습이 소개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 드리는 제사에는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하는 마음과 하나님 앞에 범한 죄를 용서함 받기 위한 목적이 있습니다. 그런데 좬가인은 땅의 소산으로 제물을 삼아 여호와께 드렸고 아벨은 자기도 양의 첫 새끼와 그 기름으로 드렸더니 여호와께서 아벨과 그 제물은 열납하셨으나 가인과 그 제물은 열납하지 아니하신지라좭고 했습니다(창 4:3-5). 하나님께서 한 사람의 제사는 받으셨고 다른 한 사람의 제사는 받지 아니하셨습니다.
가인의 제사가 하나님 앞에 열납되지 아니한 이유는?
쥱 하나님 앞에 감사를 드리기는 했으나 정성이 모자랐습니다.
성경을 보면, 하나님 앞에서는 곡식이든 과일이든 무엇을 드리든지 간에 첫 열매를 드리게 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가인은 첫 열매를 드렸다는 말이 없습니다. 여러분! 여기에서 우리는 교훈을 받아야 합니다. 하나님을 섬기는 일에도 정성이 있어야 합니다. [십의 일조]를 드려도 새 돈을 골라 먼저 구별하여 첫 열매로 드리고 나서, 그 나머지 [십의 구조]를 가지고 각자 필요한 일에 사용해야 합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중심을 보십니다. 따라서 가장 좋은 것을 먼저 하나님께 드리는 그 마음을 하나님이 열납하실 줄 믿습니다.
쥲 피 없는 제사를 드렸습니다.
피 없는 제사는 속죄 받을 길이 없습니다. 히브리서 9:22절을 보면 좬율법을 좇아 거의 모든 물건이 피로써 정결케 되나니 피 흘림이 없은즉 사함이 없느니라좭고 했습니다. 그런데 가인은 피의 제물을 드리지 않고 땅의 소산물로 제물을 삼아 드렸습니다.
쥳 악한 마음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가인이 얼마 악독한 인간이었는지 요한일서 3:12절을 보면 좬가인같이 하지 말라 저는 악한 자에게 속하여 그 아우를 죽였으니 어찐 연고로 죽였느뇨 자기의 행위는 악하고 그 아우의 행위는 의로움이니라좭고 했습니다. 이런 악독한 인간이 하루에 제사를 열 번 백 번 드린다한들 우리 하나님께서 받으시겠습니까? 그러나 가인과 달리 아벨은 믿음으로 더 나은 제사를 드렸습니다.
여러분! 지금 이 시간 성전에 모여 수천 명이 똑같이 예배를 드리고 있습니다. 그러나 믿음으로 드리는 사람도 있고, 그렇지 않은 사람도 있습니다. 여기에는 큰 차이가 있습니다. 그렇다고 하면, 믿음으로 예배를 드린다는 말이 무엇이겠습니까? 한마디로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이 있느냐 없느냐? 하는 것입니다. 성전에 나와 찬송을 해도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헌금을 해도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예배를 드리느냐 아니냐 하는 것입니다. 이 마음을 가진 사람과 가지지 않은 사람과는 하늘과 땅 차이입니다. 아벨은 양의 첫 새끼와 피로 제사를 드리므로 해서 속죄함을 받았습니다. 뿐만 아니라 아벨은 의로운 사람으로 자신과 그의 재물이 함께 하나님 앞에 열납되는, 믿음으로 더 나은 제사를 하나님께 드렸습니다.
구약성경을 보면,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 앞에 감사하는 마음으로 번제를 드렸을 뿐만 아니라 범한 죄를 사함받기 위해 속죄의 제사를 드렸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을 모르는 이방사람들은 하나님께 제사하지 아니하고, 해와 달과 별을 섬기고 심지어 산이나 강이나 바다나 바위 고목들을 향해 절을 하고 제물을 바치고, 죽은 조상에게까지 제사를 지냈습니다.
하나님을 잘 섬기면 복을 받고, 사신우상을 섬기면 망하게 됩니다.
지나온 역사를 돌이켜볼 때 역사는 반복된다는 것을 알수 있습니다. 이스라엘의 역사를 보면, 믿음이 좋은 왕들은 언제나 하나님만을 섬기고 하나님 앞에 제사를 드림으로 해서 축복을 받고 나라가 강성했습니다. 그러나 믿음이 없는 왕들은 하나님을 저버리고 이방종교를 따라 우상을 섬기므로 해서 저주를 받고 고통을 많이 당했습니다. 그런데 연약한 인간들은 속죄의 제사를 드리고도 돌아서면 또 죄를 지었습니다. 아무리 하나님 앞에 속죄의 제사를 드려도 여전히 죄를 범하고, 아무런 변화도 없으니 어찌보면 소망이 없는 사람들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인간들을 불쌍히 여겨주시사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이 세상에 보내주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 박혀 죽어주심으로 말미암아 십자가에서 흘리신 보혈로, 우리의 과거 현재 미래의 모든 죄를 대속해주셨습니다. 그러므로 이제는 더 이상 하나님 앞에 짐승을 잡아 그 피로 속죄의 제사를 거듭하여 드릴 필요가 없어졌습니다.
히브리서 11:10-14, 17-18절을 보면 좬이 뜻을 좇아 예수 그리스도의 몸을 단번에 드리심으로 말미암아 우리가 거룩함을 얻었노라 제사장마다 매일 서서 섬기며 자주 같은 제사를 드리되 이 제사는 언제든지 죄를 없게 하지 못하거니와 오직 그리스도는 죄를 위하여 한 영원한 제사를 드리시고 하나님 우편에 앉으사 그 후에 자기 원수들로 자기 발등상이 되게 하실 때까지 기다리시나니 저가 한 제물로 거룩하게 된 자들을 영원히 온전케 하셨느니라좭, 좬또 저희 죄와 저희 불법을 내가 다시 기억지 아니하리라 하셨으니 이것을 사하셨은즉 다시 죄를 위하여 제사드릴 것이 없느니라좭고 말씀하셨습니다. 이처럼 예수님께서 십자가를 지신 이후에는 다시는 제사를 드릴 필요가 없어졌습니다. 그 대신 하나님 앞에 예배를 드리게 되었습니다.
하나님 앞에 예배를 드릴 때 중요한 것은?
쥱 회개하는 것입니다.
지나간 한 주간동안도 알고 지은 죄, 모르고 지은 죄 다 용서해달라는 회개가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마음을 아프게 해드린 것을 용서해달라는 구체적인 회개가 있어야 합니다.
쥲 감사하는 것입니다.
사고 많은 이 세상에서 오늘 이 자리에 건강한 모습으로 나오게 하신 것을 감사하고 그밖에 여러 가지 감사의 제목을 따라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해야 합니다.
쥳 말씀을 잘 듣는 것입니다.
오늘도 하나님께서 내게 주시는 말씀과 교훈이 무엇인지 잘 들어야 합니다. 여러분 언제나 말씀을 들을 때에는 사람의 말로 듣지 말아야 합니다. 이 시간 하나님께서 목사님을 통해 내게 주시는 말씀이 무엇인지 주님의 음성을 들어야 합니다.
이방인들의 제사는 귀신에게 하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에서 좬대저 이방인의 제사하는 것은 귀신에게 하는 것이요 하나님께 제사하는 것이 아니니 나는 너희가 귀신과 교제하는 자 되기를 원치 아니하노라좭고 말씀했습니다. 사실 죽은 자는 전혀 의식이 없습니다. 아무 것도 모릅니다. 아무리 많은 음식을 차려놓고, 아무리 절을 많이 해도 먹지도 못하고 알지도 못합니다. 따라서 죽은 자에게 제사하는 것은 결과적으로 귀신에게 하는 것입니다. 더구나 귀신을 섬기고 제사하는 것은 하나님 앞에 진노받을 크나큰 죄악입니다. 따라서 우리 기독교인들은 더 이상 죽은 조상에게 제사를 지내서는 안 됩니다. 오직 살아계신 하나님께만 예배를 드려야 합니다.
시편 106:28-29절을 보면 좬저희가 또 바알브올과 연합하여 죽은 자에게 제사한 음식을 먹어서 그 행위로 주를 격노케 함을 인하여 재앙이 그 중에 유행하였도다좭라고 했습니다. 이 말씀은 민수기 25장을 인용한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광야길을 가다가 싯딤에 머물렀을 때 모압 여자들이 그들의 신들에게 제사하면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청하였습니다. 이에 백성들이 그들의 제사음식을 먹고 그들과 같이 바알세불에게 절을 했습니다. 이 일은 하나님을 격노케 만들었습니다. 결국 하나님의 진노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임하여 2만 4천명이 되는 많은 사람들이 염병에 걸려죽었습니다. 여기에서 우리는 귀신에게 제사하는 것은 하나님을 노엽게 하여 하나님으로부터 매를 맞게 된다는 사실을 알게 됩니다.
2. 효도 문제
죽은 조상에게 제사하는 것이 과연 효도가 되느냐 하는 것입니다. 엄밀히 말해서 효도는 살아계신 부모께 하는 것입니다. 참된 효도는 부모님의 마음을 기쁘게 해드리고 몸을 편안하게 해드리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말을 해도 ꡒ어머니 아버지 감사해요.ꡓ ꡒ이렇게 키워주신 은혜 감사해요.ꡓ라고 늘 감사를 표하고, ꡒ부모님 덕분에 성공했습니다.ꡓ ꡒ부모님 덕분에 이렇게 잘 삽니다.ꡓ 이렇게 부모님의 은덕을 높여드리면 우리 부모님께서 얼마나 흐믓해하시겠습니까.
음식을 해도 부모님의 입맛에 맞게 정성껏 만들어 드리고, 또 부모님이 우리를 키우시느라고 얼마나 고생이 많으셨습니까. 하늘에 계신 하나님 아버지께 십일조를 드리듯이 어머니 아버지 두 분에게도 십일조를 나누어 드려보세요. 아마 자식 키운 보람을 느끼실 것입니다. 참된 효도는 이렇게 하는 것입니다.
기독교의 효도가 산 효도요 실제적인 효도이며 참 효도입니다.
이방종교의 효도는 죽은 효도요, 형식적인 효도이며 거짓 효도입니다. 기독교인들은 추석명절에 제사를 지내는 대신 고인을 추모하여 하나님께 예배드릴 수 있습니다. 추모예배를 드릴 때, 이렇게 훌륭한 부모를 주신 것을 감사하시기 바랍니다.
추모의 예배를 드리는 목적은?
쥱 조상의 빛나는 업적과 유덕과 유훈을 되새기며 그대로 살지 못한 것을 하나님 앞에 회개하고 이제부터는 그대로 살기로 결심하는 것입니다.
쥲 살아계신 부모님께 갑절의 효도를 해드리기로 결심하는 것입니다.
쥳 형제와 친척간에 서로 사랑하며 우애있게 살아가기로 결심하는 것입니다.
쥵 믿음으로 살아서 천국에서 면류관 쓰고 다같이 만나기로 다짐하는 것입니다.
누가복음 16장에 나오는 [부자와 나사로]에서 볼 수 있듯이 자신은 비록 천국에 들어가지 못했으나 아직 세상에 남아있는 자신의 형제들만은 이곳에 오면 안 된다고 안타까워하며, 천사를 그들에게 보내 이곳 사정을 알 수 있도록 부탁한 것같이 지옥에 가신 부모님이라도 이 마음을 가지고 계실 줄 믿습니다. 그러므로 추모 예배를 드릴 때 믿음생활 잘하다가 면류관 쓰고 천국에서 만나자고 다짐하는 시간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아무쪼록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 사람들에게는 덕을 세워서 존경받고, 후손들에게는 좋은 본을 보이며, 날마다 축복을 받을 뿐만 아니라 축복을 나누어주면서 사는 성도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출처 : 인터넷로고스선교회
글쓴이 : lemalogos 원글보기
메모 :